내 멋대로 쓴 것

블로그 포스트 하나를 쓰는데 걸리는 시간

oneiropolo 2010. 10. 31. 22:13
이건 어떻게 보면 초심자의 변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린시절부터 무언가를 하게 되면, 잘 못하는 것과 어설프게 하는 것이 제일 싫었다.
그래서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그것을 잘하는 것을 의미 했고, 또 제대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싶었다.

위와 같은 철학이 어떻게 보면 어린애들에게는 나름 통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부모나 친구, 혹은 굳이 부모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주변의 어른들의 도움을 받기 편한 시기가 바로
어린시절이니까...

그리고 딱히 어린이가 무언가를 한다고 해도, 그 완벽성을 기하기에는 그 일이나 완벽성의 기준 자체가 현저하게
낮을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그 나이에 걸맞는 일을 해야하기 시작하면서 사태는 달라진다.
이제는 도저히 그 어린시절에 그토록 바라던 '완벽성'이라는 기준에 맞추어 무언가를 할 수 없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렇게 어른들은
작은 것 하나를 시도하려 해도 그에 맞는 다양한 조건과 준비작업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과연 그 결과가 오류없이 완벽하게 끝났는지는 스스로 확신 할 수 없다.
바로 그것들을 타인에게 드러내놓고 평가를 받기 전까진 말이다.

그렇게 어느 순간 부터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나의 완벽성의 기준에 맞지 않기 시작하면서
나는 모든 일에 흥미를 잃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블로그를 처음 쓰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도 네이버 블로그에는 과거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지만...)
그때도 항상 힘겨운 것은 포스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느냐이다.
게다가 많은 시간을 들여놓고서도 그에 따른 결과물이 나의 의도에 맞지 않다던가...
혹은 만들어진 결과물의 수준이 정말로 내놓기 민망한 수준이하의 글, 혹은 결과물이던가...

학교 다닐 시절에 코딩을 할때에도, 항상 머리속에는 무언가 완벽한 것이 자리잡고 있다.
마치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본질 그 자체를 본 듯한 착각을 가지고 코딩을 시작하지만
결과는 항상 그렇지 못하다.

흔히들 말하는 '시뮬라르크는 결코 그 본질을 뛰어 넘을 수 없다'라는 말처럼
항상 나의 결과물들은 내 머리속에 있는 것들을, 내가 처음에 시도하고자 했던 것들을 그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

그래서 종종 담는 포스트들은 지극히 작은 조각들이거나
술에 취해서 완벽성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게 아무렇게나 휘갈긴 것들을 올리거나
혹은 주변에서 보고는 쉬이 잊혀질까봐 두려운 것들이었다.

내가 그러한 완벽성에 덫에 갇혀있으면서... 지금 이 순간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는 이유는
그러한 완벽성의 덫과 굴레에 조금이라나 벗어나고 싶어서...
그리고 어디까지나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한가지는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수 많은 책들을 읽고, 머리속에서는 항상 작은 생각이든 큰 생각이든 생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지금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과거 어린시절에나 바라던 연애나 사랑 같은 것들이 아닌
그저 사유하는 것, 그리고 그 사유를 통해서 삶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위 말한 연애와 생각들이 보잘 것 없는 것들이라거나 하기 싫은 것들이 아닌 것임은 분명하지만
난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고... (때로는 이 전제와 생각자체가 나를 옥죄는 굴레가 되기도 하지만)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기에, 그리고 그 배움이 어느정도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면
다른 것들도 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거라 생각한다.


블로그 포스트 하나를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
솔직히 다른 블로거들이 화려한 사진들과 유려한 글과 색깔 장식으로 포스트를 올리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아마도 상당히 쉽지 않은 작업일테고, 그러한 작업을 하는게 걸리는 시간 또한 짧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그에 못지 않게 내가 단순한 플레인 텍스트로 포스트를 작성하는데 걸리는 시간 또한 짧지 않다...

예상했던데로 이 포스트 역시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머리속에 있는 것들을 효과적으로 옮겨담지 못한 전형적인 포스트의 예라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그래도 다시한번 시작해봐야 할 듯하다.

기승전결과 맺고 끊음이 전혀 없는 난장판이 통하는 글...
그리고 그 속에 이 넘치는 미디어 시대에 전달 할 수 있는 '작은 정보' (마치 우주속에 떠다니는 다이아몬드 처럼) 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괜찮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면서 (나답지 않은 긍정적인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