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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쓴 것

한때는 어리석게도 사람을 빛나게 하는게 그 사람이 가진 물건들이라고 생각한적이 있다. 예를 들면 최신형 휴대폰, 고가 브랜드의 옷, 시계와 구두같은 고가의 액세서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엔 당연히 언젠가 돈이 생기면 그런 것들을 사고 싶었다. 그런 것들을 사고, 그런 것들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오로지 그 물건들로 인해서 내가 변하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은 어리석은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최신형 휴대폰을 들고 그것을 활용하는 내 모습은 마치 더 트랜디하고 스마트한 사람인 것 같았고, 고가의 옷과 악세서리를 걸치고 있으면 그만큼 더 패셔너블해지고 노블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며 내 능력에 걸맞지 않게 많은 돈을 벌게 되기 시작하면서 난 그 착각들을 마치 사실인양 믿으며 살았다. 내가 가진것들과 내 몸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마치 나를 의미하는 것처럼. 돌이켜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 착각들이 사실인양 믿겨질때가 마음이 더 편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착각에서 깨어난게 언제였을까?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건, 그 사람이 가진 물건도 아니고, 그 사람이 걸치고 있는 옷도 아니고, 지갑 속에 들어있는 현금도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생각', '성실성', '의지력', '인내력' 같은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때가. 


대학시절 부족한 용돈과 수입에도 절대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품목중에 하나는 커피와 책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제대로된 커피 맛이 뭔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인거 같으나, 그 시절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 아니면 커피 세계의 로버트 파커인양 커피 맛을 품평하고 좋은 커피 (솔직히 말하면 그저 비싼커피)만 찾아다니며 돈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책, 읽지 않고 책을 잔뜩 가지고만 있어도 훨씬 똑똑해질거라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쓰는 두개의 방 가운데 하나는 책들이 쌓여있다. 소위 장서가라 불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리 많지도 않지만 그래도 어설프게 나 책좀 모았다고 하는 사람들보다는 많이 가지고 있다. 책들이 이만큼 쌓여가는동안 내 몸은 점점 늙어왔고, 내 생각도 이렇게 늙어왔는데, 쌓여있는 책들 가운데는 10번도 넘게 반복해서 읽은 책들도 있고, 솔직히 말해 사놓고 표지 한번 넘겨보지 않고 책장에 꽃혀있는 책들도 있다. (언젠가는 꼭 읽을 것이라 다짐하지만, 솔직히 그 책을 다시 열어보기보단 새 책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새 책을 사보는 일이 더 많다) 그렇게 책을 읽기도 하고, 사기도 하고, 또 팔아보기도 하면서 깨달은 건, 결국 방에 쌓여있는 책의 양이 그 사람을 독서가임을 결정하는게 아니라는 것. 좋은 양서를 고르고, 그 양서를 마치 잘 씹어 삼키듯 정독하고, 그 내용을 영양분 삼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살찌우는 사람만이 진정한 독서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렇게 수많은 책을 사고 팔고 버리면서 이정도 깨달음은 얻었다. 투자대비효율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없진 않았다는 것에 다행이라 생각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양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책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고, 하루에 얼마나 많은 내용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책 한 권을 소중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사람. 때로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지루하고, 읽기 귀찮은 내용이더라도 끈기를 가지고 이해와 암기에 도전하는 사람. 독서보다 더 재미난 일들이 있더라도 잠시 미루어두고 독서를 택하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쌓인 생각과 경험을 삶에 적용하고 자신의 일에 활용하는 사람. 문득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그 이상향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괴리가 너무 컸다. 당연히 좌절과 상심이 찾아왔다. 


그렇게 좌절과 상심속에서 어설프게 사유하면서 들은 생각은 비단 소유의 문제가 책에만 적용되는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물건을 통해 내가 느끼는 효용이 없다면 그 물건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다. 내가 골라 들을수 있는 노래가 수백만곡이 있어도 시간을 내 그 중 한 곡을 골라 재생을 시키고 내 귀에 흘려보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등학교 시절 등록해놓고 풀지 않은 수많은 수능 학습지들이 그랬던것처럼, 결국은 물건과 소유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결국 인간이 가진 재화 가운데 가장 한정된 자원은 '시간'이었다. 내가 그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든지 그 물건을 다루고 효용을 느끼기 위한 시간을 할당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난 이제까지 쓸데 없는 많은 것들을 아껴왔으면서도 시간은 아끼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아니 소중한 건 알았지만, 게으르고 태만하고 나약한 의지가 시간을 낭비하도록 방치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 시간이 제일 소중한 것이었다. 돈보다도, 가지고 싶은 물건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바로 시간. 그 시간이 소중하기에 인간을 좀 더 가치있게 만드는건 그가 가진 물건과 돈이 아니라 시간을 값지게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인거 같다. 그렇게 시간을 값지게 사용하는 법이란 결국 성실함과 인내력과 의지력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정말 노블하고, 정말 멋지고, 정말 훌륭한 사람은 성실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채워나가는 사람인것 같았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채우고,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 마치 매일 아침 8시면 가게 문을 열고 다림질을 시작하는 내 출근길에 있는 세탁소의 사장님 같은 사람말이다. 


결국 내가 사고 싶어했던 물건들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나를 빛나게 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는 게으르고, 태만하며, 어리석고, 나약하다. 


그래서 난 요새, 많은 돈을 벌고 가지지 못한 물건을 사고 싶기보다는 지금보다 더 성실해지고 싶다. 지금보다 더 부지런해지고 싶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 되고 싶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악을 쓰고 기를 쓰며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기 싫어도 참고 해내는 사람이고 싶고, 안될 것 같아도 조금만 더 애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어리석은 이상을 버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은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겠지만) 그렇다. 모두가 내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사람을 빛나게 하는건 그가 가진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과 그가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 세속의 화려함이 아닌 영혼과 정신의 화려함과 견고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 아닐까? 


화려하고 인정받는 성취와 결과물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기에, 게다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그런 것들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나같은 존재에게 그저 신기루나 다름 없기에. 나 자신이 나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성실함과 인내를 갖추고라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찌보면 그것이 나 스스로 갖출수 있는 최소한의 존엄이자 인간다움 그리고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의 위대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 멋대로 쓴 것

대체로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고 한다. 변화가 주어지면 우선은 그 변화를 회피하려 하며 최대한 그 변화를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게끔 만들기 위해 애쓴다고, 그래서 사람은 변화를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이곳 저곳에서 가끔 들을 수 있다.

본인은 요새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있는데, 30년이 채 안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의 몸에 대해 맺힌 그 한이 너무나 크기에, 주변에서는 간혹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다이어트 보조제까지 참고 먹으며 애쓰고 있다. 최대한 몸의 지방을 컷하고 근육을 얻어, 이제껏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의 모습을 볼때마다 느꼈던 그 화를 조금이나마 덜 느끼고 싶어서. 그리고 나도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몸'으로써 적으나마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여성들의 경우에는 '평생'의 과제이며, 모든 남성들의 꿈과 소망이자 드래곤볼이라도 모아 빌고 싶은 소원 1위인 소위 '몸짱'의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정보의 소통이 워낙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그 소통되는 정보들 또한 쉽게 과장되어 전달 되다보니, 대부분의 사람이 '몸짱'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은 노력으로도 쉽게 몸짱이 될 수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되곤 하지만, 적게나마 운동을 시도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하루 8~10시간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 하고 난 후 운동을 통해 자신의 몸을 변화 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설령 하루의 절반 이상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시간을 활용하여 몸을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시도해본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그런 변화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깨닫고 살아온 사람으로써 문득 오늘 들은 생각은, '과연 사람은 변화가 가능한 존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일종의 오기와 젊은 혈기로 '변화'되지 못하는 건 나 자신의 의지와 열정의 문제, 혹은 그 변화를 시도하는 방법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지만, 최근 들어 내가 해온 경험들은 이제까지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생각들을 전달해주고 있다. 그래서 그 생각들을 조금이나마 정리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주변의 변화를 목격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주변 환경이나, 주변의 존재등에 나타나는 변화를 인지하고, 그 변화에 맞추어 적당히 자신의 생활 양식을 적응시켜 나간다. 그것은 일종의 삶의 자연스러운 행위로써, 주변의 변화에 의해 자신이 도태되거나 그로 인해 진화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을 피하려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와는 조금 다르게, 사람은 스스로 변화하는 것에 있어서는 조금 인색하다. 자신의 식습관이나, 주거 양식, 혹은 생활 패턴 혹은 신체 구조 등의 변화를 자신의 직접적인 의지가 개입된 노력에 의해 변화되는 것은 주변의 변화에 비해 생각보다 드물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보더라도 그렇다. 어떤 연예인들은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그 모습을 그대로 TV에 모습을 보인다. (성형수술이나 기타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외모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이상)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자신이 변하고 싶지 않았을까? 어떻게든 자신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는 말일까? (예를 들면 지금보다 너 슬림한 몸매 혹은 더 깔끔한 피부 혹은 더 많은 근육 등을 위해서)

필자가 좋아하는 축구의 예를 들어보자, 흔히들 축구팬들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박주영 같은 선수는 테크닉과 축구센스는 훌륭하지만 무언가 피지컬이 연약하다.
차두리의 피지컬은 세계 Top 수준이지만, 볼을 다루는 테크닉이 뭔가 조금은 부족하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까?

박주영이 자신의 피지컬에 대해서 (그렇다고 해서 지금 박주영의 피지컬이 완전 쓸모 없는 수준의 선수라는 말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루니와 같은 완벽한 스트라이커에 비교했을 때 그렇다는 말이다. 차두리의 경두도 그렇다. 어디까지나 이미 세계 수준 선수의 테크닉을 일반 선수랑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두리가 자신의 테크닉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없을까? 

그리고 그와 같은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고 극복하려는 시도를 해보진 않았을까? 

어찌 그랬으랴.. 어떻게 보면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그들은 자신의 단점을 보안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으리라, 그랬기 때문에 지금 그들은 그들이 속한 리그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보면 그렇게 노력을 했음에도 그 변화는 어떤가? 과연 눈에 띄게 변하는 모습이 보이는가? 

박주영이 차두리만한 피지컬을 가지게 되고, 차두리가 박주영과 같은 테크닉과 축구센스를 가지게 되는 것이 가능한가? 박지성이 호날두 혹은 루니처럼 플레이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과연 노력한다면, 그리고 올바른 방법으로 변화를 시도만 한다면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할 수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변화하지 못하는가? ...


여기서 결국 우리는 한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리고 이뤄낼 수 있는 '변화'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박지성이 1년 혹은 2년 뒤에 호날두와 같은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사람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고, 어디까지 변할 수 없을까? 
그렇다면 과연 나는 소위 말하는 '몸짱'이 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 패턴, 식습관, 근무 패턴을 바꾸어야 하고, 기초 체력부터 모든 것을 변화 시켜야 한다. 과연 그렇다면 그게 가능할까? 지금 나의 체력으로, 지금 나의 정신력과 의지력으로, 지금 나의 생활 환경으로? 

사람은 때론 변화하지 못하는 부분에는 자신의 의지력을 탓한다. 과연 그것이 그렇게 의지력을 탓해야 하는 걸까? 체형이 뚱뚱한 사람, 피부가 거친 사람, 외모와 체형이 현대의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의 의지력을 탓하며 변하지 못하는 그들을 비난해야 하는 걸까? 

(결국 글을 쓰는 도중에 체력 소모를 많이 하다보니 빨리 정리를 하자면)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그에 분명 변화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다. 아무리 노력해도, 애써도, 박지성이 호날두가 될 수 없고, 박주영이 차두리의 피지컬을 가질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도 아니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태도의 문제도 아니다. 

다만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한계이며, 스스로를 유지하고, 그 개성을 나타내려는 특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모든 인간이 카멜레온처럼 쉽사리 변할 수 있는 존재라면, 과연 나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것은 과연 무엇이라 할 수 있겠는가? 

변할 수 있는 부분과 변할 수 없는 부분들 그것들이 모여 한 사람을 이루고 한 존재를 이룬다. 
그리고 그것들이 바로 나를 이룬다. 우리 모두는 (어떻게 보면 나 자신에게 더욱 강조해야할 말이겠지만)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 뿐만이 아닌 타인 고유의 모습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내 멋대로 쓴 것
 포유동물의 생존방식 가운데 그 유전자 증식 및 보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가운데 하나는 바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포유동물 특히나 영장류의 언어를 자세히 분석한 학자들의 경우의 그들이 내는 소리를 음성학적으로 분석해보면 대부분의 소리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고, 자신의 존재를 다른 동족들에게 알리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자신의 짝을 만나 짝짓기를 하고, 자신의 새끼를 낳아 자신의 유전자를 이 세상에 보존한다. 결국 그렇게 한 생물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신의 유전자를 이 세상에 남기는 것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오늘 아침에 본 작은 한마디로 시작된다. 

'삶은 소유가 아닌 존재' 라는 말을 아침에 무료로 배포하는 일간지를 통해서 보게 된 이후, 
삶이 소유가 아닌 존재라면, 결국 그 목적은 자신의 존재를 이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내가 아닌 타인에게 나의 존재를 알린다. 때론 소리를 통해서, 때로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서, 
결국 인간은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알리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인정 받고자 한다. 최대한 우수하고 훌륭한 존재로, 혹은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로서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세상에 존재하는 '것'(Things)들이 많아짐에 따라서,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예전 만큼 그리 쉽지 않아졌다. 
 과거에는 한 마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을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혹은 존재하지 않는지 파악하고 살았고, 무엇이 사라지거나 혹은 그 무엇이 새로 나타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관심을 가지고 파악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현대에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그러한 타자에 대한 호기심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설령 이웃에 누군가가 이사를 온다던가, 누군가 새 아이를 가졌다던가, 혹은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던가 하는 생각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되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알리기 위한 새로운 존재 표출 방식을 개발해 냈다. 각종 블로그와 홈페이지, 싸이월드,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최대한 그들의 입맛에 맞는 그리고 그들의 구미에 맞는 메시지와 사진들을 포함하여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다. 

그렇게 해서 결국 그 모든 정보들은 조금은 편협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하는 것 아닐까? 

'나 지금 여기 있소....' 

심지어 4Square와 같은 지리정보를 포함한 소셜 네트워크들은 자신들의 존재 위치를 GPS 소숫점 자리까지 타인들에게 노출시킨다. 자신이 현재 어느 곳에 있는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타인에게 알리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일종의 사회적 지위를 표출하는 행위가 된다. (현역 유명 CEO들은 자신의 위치와 행위 혹은 음식들을 트윗하는 걸 취미로 삼고있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TV, 영화, 잡지, 신문, 뉴스, 인터넷을 통해서 현대의 사람들은 수 많은 소식들을 접하고 새로운 존재들에 대해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존재들을 동경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 존재들은 주변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존재와 다르게 현실과는 동떨어진 크게 과장된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고, 오로지 그와 같은 존재들이 실재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 라는 오해가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한번 돌아보자, 과연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그렇게 TV와 영화같은 곳에 등장하는 것들만큼 화려한 것들인지,그러한 화려함에 길들여져, 정작 소박함이라는 것과 진정한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자신의 사고의 기준을 갖다대기보다는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기 시작했고,모든 판단 기준은 그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보여지는 시각적인 이미지가 얼마나 아름답고 화려한가에 따라 그 가치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에 카메라를 들이대보자, 그것들이 과연 TV와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만큼 화려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러한 존재들인지?

아쉽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적어도 내 시선과 철학으로는 아닌거 같다.) 그 화려함을 위해서는 뛰어난 사진 보정 기술과 포토샵과 같은 컴퓨터 도구를 필요로 한다. 비록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미적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름다움을 과장하는 과정과 도구를 필요로 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우리 스스로를 과장하고 꾸민다. 때로는 카메라 렌즈에 비춰진 모습을, 때로는 자신의 머리속에 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과장하고 과장해서 타인에게 알리기 위해 애쓴다. 심지어는 자신이 먹고 있는 것과, 자신의 몸에 걸쳐지는 모든 것들과, 2차원 평면에 사영된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과장한다. 누가 강요하고 있는지 모를 현대의 미적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기 위해서.

결국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굳이 인간이 아닐지라도, 살아간다는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것과 동물과 다름 없이, 끝 없이 자신의 모습을 과장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우월함을 과장한다. 마치 영장류들이 짝짓기를 위해 자신의 몸을 최대한 커보이게 부풀리듯이 카메라 렌즈에 비친 자신의 시각적 모습을 과장한다. 때로는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보조제, 호르몬 및 영양 보충제들이 동원된다. 

그렇다. 결국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자신의 존재를 존재를 타자에게 알림으로 인해 살아간다. 그리고 때로는 서로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파괴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일을 하고, 트윗을 하며, 자신의 위치를 4Square에 알린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다듬기 위해 헬스 클럽에 등록을 하고 성형수술을 하며, 다이어트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지금도 저 열대 우림 어딘가에서 열심히 자신의 짝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외침과 그리 크게 다를 건 없지 않을까? 

한 영장류학자가 자신의 TED 강연에서 동물을 흉내내었던 것처럼...
'나 여기 있소...' 라는 외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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