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어리석게도 사람을 빛나게 하는게 그 사람이 가진 물건들이라고 생각한적이 있다. 예를 들면 최신형 휴대폰, 고가 브랜드의 옷, 시계와 구두같은 고가의 액세서리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엔 당연히 언젠가 돈이 생기면 그런 것들을 사고 싶었다. 그런 것들을 사고, 그런 것들을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오로지 그 물건들로 인해서 내가 변하고,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될 것 같은 어리석은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최신형 휴대폰을 들고 그것을 활용하는 내 모습은 마치 더 트랜디하고 스마트한 사람인 것 같았고, 고가의 옷과 악세서리를 걸치고 있으면 그만큼 더 패셔너블해지고 노블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며 내 능력에 걸맞지 않게 많은 돈을 벌게 되기 시작하면서 난 그 착각들을 마치 사실인양 믿으며 살았다. 내가 가진것들과 내 몸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마치 나를 의미하는 것처럼. 돌이켜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 착각들이 사실인양 믿겨질때가 마음이 더 편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착각에서 깨어난게 언제였을까?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건, 그 사람이 가진 물건도 아니고, 그 사람이 걸치고 있는 옷도 아니고, 지갑 속에 들어있는 현금도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생각', '성실성', '의지력', '인내력' 같은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때가.
대학시절 부족한 용돈과 수입에도 절대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품목중에 하나는 커피와 책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제대로된 커피 맛이 뭔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인거 같으나, 그 시절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 아니면 커피 세계의 로버트 파커인양 커피 맛을 품평하고 좋은 커피 (솔직히 말하면 그저 비싼커피)만 찾아다니며 돈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책, 읽지 않고 책을 잔뜩 가지고만 있어도 훨씬 똑똑해질거라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쓰는 두개의 방 가운데 하나는 책들이 쌓여있다. 소위 장서가라 불리는 사람들에 비하면 그리 많지도 않지만 그래도 어설프게 나 책좀 모았다고 하는 사람들보다는 많이 가지고 있다. 책들이 이만큼 쌓여가는동안 내 몸은 점점 늙어왔고, 내 생각도 이렇게 늙어왔는데, 쌓여있는 책들 가운데는 10번도 넘게 반복해서 읽은 책들도 있고, 솔직히 말해 사놓고 표지 한번 넘겨보지 않고 책장에 꽃혀있는 책들도 있다. (언젠가는 꼭 읽을 것이라 다짐하지만, 솔직히 그 책을 다시 열어보기보단 새 책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새 책을 사보는 일이 더 많다) 그렇게 책을 읽기도 하고, 사기도 하고, 또 팔아보기도 하면서 깨달은 건, 결국 방에 쌓여있는 책의 양이 그 사람을 독서가임을 결정하는게 아니라는 것. 좋은 양서를 고르고, 그 양서를 마치 잘 씹어 삼키듯 정독하고, 그 내용을 영양분 삼아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살찌우는 사람만이 진정한 독서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렇게 수많은 책을 사고 팔고 버리면서 이정도 깨달음은 얻었다. 투자대비효율이 그리 높지는 않지만 없진 않았다는 것에 다행이라 생각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양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책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고, 하루에 얼마나 많은 내용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책 한 권을 소중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사람. 때로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지루하고, 읽기 귀찮은 내용이더라도 끈기를 가지고 이해와 암기에 도전하는 사람. 독서보다 더 재미난 일들이 있더라도 잠시 미루어두고 독서를 택하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쌓인 생각과 경험을 삶에 적용하고 자신의 일에 활용하는 사람. 문득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그 이상향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괴리가 너무 컸다. 당연히 좌절과 상심이 찾아왔다.
그렇게 좌절과 상심속에서 어설프게 사유하면서 들은 생각은 비단 소유의 문제가 책에만 적용되는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물건을 통해 내가 느끼는 효용이 없다면 그 물건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다. 내가 골라 들을수 있는 노래가 수백만곡이 있어도 시간을 내 그 중 한 곡을 골라 재생을 시키고 내 귀에 흘려보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이 그랬던 것처럼, 고등학교 시절 등록해놓고 풀지 않은 수많은 수능 학습지들이 그랬던것처럼, 결국은 물건과 소유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결국 인간이 가진 재화 가운데 가장 한정된 자원은 '시간'이었다. 내가 그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든지 그 물건을 다루고 효용을 느끼기 위한 시간을 할당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난 이제까지 쓸데 없는 많은 것들을 아껴왔으면서도 시간은 아끼지 않고 살아왔던 것이다. 아니 소중한 건 알았지만, 게으르고 태만하고 나약한 의지가 시간을 낭비하도록 방치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 시간이 제일 소중한 것이었다. 돈보다도, 가지고 싶은 물건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바로 시간. 그 시간이 소중하기에 인간을 좀 더 가치있게 만드는건 그가 가진 물건과 돈이 아니라 시간을 값지게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인거 같다. 그렇게 시간을 값지게 사용하는 법이란 결국 성실함과 인내력과 의지력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정말 노블하고, 정말 멋지고, 정말 훌륭한 사람은 성실함으로 자신의 인생을 채워나가는 사람인것 같았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채우고,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사람. 마치 매일 아침 8시면 가게 문을 열고 다림질을 시작하는 내 출근길에 있는 세탁소의 사장님 같은 사람말이다.
결국 내가 사고 싶어했던 물건들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은 나를 빛나게 하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는 게으르고, 태만하며, 어리석고, 나약하다.
그래서 난 요새, 많은 돈을 벌고 가지지 못한 물건을 사고 싶기보다는 지금보다 더 성실해지고 싶다. 지금보다 더 부지런해지고 싶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 되고 싶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악을 쓰고 기를 쓰며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기 싫어도 참고 해내는 사람이고 싶고, 안될 것 같아도 조금만 더 애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어리석은 이상을 버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은 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겠지만) 그렇다. 모두가 내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겠지만 사람을 빛나게 하는건 그가 가진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행동과 그가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 세속의 화려함이 아닌 영혼과 정신의 화려함과 견고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 아닐까?
화려하고 인정받는 성취와 결과물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기에, 게다가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그런 것들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나같은 존재에게 그저 신기루나 다름 없기에. 나 자신이 나 스스로 당당할 수 있는 성실함과 인내를 갖추고라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찌보면 그것이 나 스스로 갖출수 있는 최소한의 존엄이자 인간다움 그리고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인간의 위대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